감사할 일이다
이언 매큐언을 무심코 선택해서 책을 주문하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행운에.
나는 그에게 존경심을 담아
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가란 무엇인지,
아니다,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소설가인지,
그것들이 왜 '문학' '작가' '장인' '예술' 등의 심오한 단어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
...고 열렬히 진심으로 찬미하고 싶다.
그러나, 내 진심이 열에 들뜬 서툴고 유치한 감정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
그가 앞에 있다면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애쓸 것 같다.
소설의 힘과 소설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'작품'이 될 수 있는 사례를 경험하고 싶은가.
소설가가 무엇이고 작가가 무엇이고
그 존재가 어떤 마력과 힘, 울림과 감동을 오직 '문자'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는지 목격하고 싶은가.
그렇다면 우선 당신은 속죄를 읽어.
내가 그를 선택했던 것은 오로지,
'이언 매큐언'이라는 그의 이름을 발음 했을 때 느껴지는 시크함(?) 때문이었던 것 같다.
이 작가의 이름은 (이름이 그럴 수 있다면) 어쩐지 세련되고, 무겁고, 차가운 지성미를 풍기는 것 같았다.
나의 무지한 허영심이 행운과 감사로, 감동으로 이어지는 적은 거의 없었기에 더욱 감사하다.
- '기욤 뮈소'라는 이쁜 발음 때문에 그 자리에서 두 권을 사서 집에 와서 읽곤,
<낚였다>, <개피봤다> 라고 지껄이다가 블로그에 비공개로
"그 자식은 스토리텔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, 부끄러운 줄 알아라"
따위의 글을 갈기는 류의 에피소드가 흔한 내게는 더욱 감사한 일이다.
그는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쓸 수 있을까.
나는 분명 놀랐다.
나는 그의 완벽한 재능에만 감탄한 것이 아니라, 그 얄밉도록 완벽한 재능으로 이루어 낸 작품이,
한 여름의 분수대 아래 연인들처럼 소박하고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과
너무나 인간적인 울림이라는, 정말 낯설게 느껴질 정도의 감동을 주었다는 데
'당혹감'과 비슷한 류의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.
후. 처음에 이 <속죄>를 오직 그의 이름이 주는 뉘앙스에 끌려서 샀고
그리고 꽤 오랫동안 <속죄>라는 무거운 제목이 주는 위압감이 지루하게 느껴져
기욤 뮈소 따위의 책을 두 권이나 읽는 동안에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다가
'샀으니 읽어야지'하는 매우 실용적(!)인 생각으로 침대 협탁에 둔 채로도, 두어달은 그냥 지나쳤던 거 같다.
모르겠다.
와. 정말.
"와"다.
고마워요, 이언 매큐언!
아직, 나는 당신의 책을 한 권 밖에 안 읽었으니까.
앞으로 읽을 당신의 책이 적어도 7권 이상은 되는 것 같으니까.
정말 고마워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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